다도를 아십니까
「잠자는 공주의 우울과 한때 아이였던 보호자들」 92화 꿈의 미로 본문
원문 링크 : https://novel18.syosetu.com/n7091gi/95/
夢の迷い路
파스토르가 눈을 뜬 곳은 익숙한 고아원의 도서실이었다.
20년 전 그대로인, 조용하고, 먼지가 많고, 아무도 없는, 파스토르만의 공간이다.
책을 읽던 도중에 따사로운 햇빛 탓에 잠들어버렸던 모양이다.
파스토르는 시야가 흐릿한 눈을 비비며 책상에 펼쳐둔 책을 내려다본다.
――잠자는 공주의 동화.
파스토르는 고개를 기울인다.
어째서 이런 어린이용 책을 읽고 있었던 걸까.
파스토르는 책을 덮는다.
그 반동인지 어깨에 둘러져 있던 담요가 스르륵 미끄러져 떨어진다. 누군가가 잠들어 있는 파스토르의 어깨에 둘러준 모양이다.
「……참견쟁이 자식」
파스토르는 가볍게 혼잣말을 내뱉곤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 이스쿰 사제원에서 파스토르를 신경 쓰는 녀석은 한 명밖에 없다.
파스토르는 책을 책장에 돌려둔 후 담요를 들고 도서실을 뒤로 한다.
그리고, 원장실의 문을 연다.
「비스크. 시간이 났으면 깨워. 계속 기다렸다고」
「불면증인 막내가 행복하게 자고 있는데? 나는 못하겠는걸」
파스토르는 담요를 응접용 소파에 내팽개치고, 털썩 주저앉는다.
비스크는 서류를 보고 있던 시선을 올려 근처에 있던 벨을 울린다.
달려온 직원에게 차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하고, 파스토르의 정면에 앉는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용무야」
「……아까 불면증이라고 했나? 내가」
「그게?」
「언제부터?」
「예전부터 그랬잖아?」
「예전이라니?」
「갑자기 왜 그래?」
비스크는 잔뜩 표정을 구기며 걱정된다는 듯이 파스토르를 바라본다.
파스토르는 왜인지 모르게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쓸며 그곳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기묘한 위화감에 눈썹을 찌푸린다.
「있지, 너…… 하란에 대한 거 기억해……?」
「하란? 뭐, 고아원에서는 눈에 띄는 존재였고 말이지. 인기도 있었고…… 그 녀석이 왜?」
「알고 있나, 싶어서…… 지금 어쩌고 있나……」
비스크는 쓴웃음을 짓는다.
「알 리가 없잖아. 애초에 사는 세계가 달라」
「그랬……던가?」
「하란은 호상의 외동아들이다. 당시의 원장이 후견인으로서 보호하고 있었을 뿐이고, 그때부터 우린 입장이 달라. 혼자 학교에 다니기도 했고, 원하는 건 뭐든 사도 됐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 녀석…… 뭔가……」
말이, 목에 걸려 잘 나오지 않는다.
비스크가 설명하는 하란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아――.
「항상 울고 있지 않았던가…… 누군가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아니, 그 녀석은 항상 웃고 있었어. 돈도 아낌없이 잘 써서 항상 주위에 사람이 있었고…… 못된 아이였던 그로우랑도 잘 어울려 다녔으니까 말이야」
「그로우랑? 하란이?」
파스토르는 그럴 리가 없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어 다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 커다란 위화감이 느껴진다.
파스토르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고 비스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비스크, 너…… 안경은?」
「하? 안경?」
「썼지, 계속……」
「그럴 리가 없잖아. 눈이 나쁜 것도 아닌데」
파스토르는 참지 못하고 일어선다.
아니야.
여기가 아니야.
「파스토르? 어이……!」
도망치듯이 원장실을 뛰쳐나가 도서실로 돌아온 파스토르는 영문도 모른 채 방금 전 책장에 돌려두었던 책을 찾는다.
하지만 분명히 방금 전에 꽂아두었던 책이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여기 꽂았는데…… 여기에…… 그걸…… 아아, 젠장…… 뭐였더라, 기억이 안 나…… 젠장, 젠장……!」
그림책이다. 그림책이었다.
하지만 무슨 그림책이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무엇을 하러 이곳에에 왔나?
쫓아온 비스크가 어깨를 세게 움켜잡는다.
돌아봄과 동시에, 파스토르는 다시 눈을 뜬다.
이번에는 모르는 방의 침대 위다.
전신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고개를 들자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의 하란이 서있다.
「시끄럽다고 너! 일어날 때마다 매번 소리 지를 거면 나가라고 했지! 나는! 새벽까지! 일이었다고! 매일 밤 칠렐레 팔렐레 여자랑 놀러다니는 너랑 다르다고!
「……하? 내가, 뭐?」
「잠꼬대 하지 말라……고!」
하란은 분노를 담은 과일을 파스토르에게 던진다.
보기 좋게 직격해, 파스토르는 작게 악 소리를 내며 머리를 부여잡는다.
「잠…… 어이, 제대로 잡으라고 멍청아!」
하란이 당황한 채 달려온다.
파스토르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찬찬히 하란의 얼굴을 본다.
그 얼굴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괜찮냐? 눈에 맞진 않았지. 그것보다 화났어?」
「……아니, 그냥…… 멍해서……」
하란은 명백하게 안심한 듯한, 하지만 금방 질린 듯한 표정을 짓고 파스토르에게 등을 돌린다.
「뭐, 나는 기한까지 그림을 납품할 수 있으면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신작 어느 정도 진행됐어?」
「그림……? 신작……?」
「시치미 떼도 마감은 안 늘릴 거다」
「아니, 정말로 의미가……」
「어라? 뭐야 있잖아. 가지고 왔으면 그렇다고 해! 그럼 일어날 때 지르는 비명 정돈 완ー전 용서할 수 있는데!」
하란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방구석에 세워져 있는, 천으로 덮어져 있는 판자에 손을 뻗는다.
그림.
그렇다. 그림이다.그림을 그렸다.
파스토르는 물감이 묻어있는 자신의 손가락을 본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없이, 고아원의 도서실에서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있던 그림이 있다.
하란은 판자의 천을 벗긴다.
그곳에는 한 명의 소녀가 그려져 있다.
하란은 잠시 그림에 몰두한 채 한숨을 내쉰다.
「……예쁘다」
하란의 손끝이 살짝 그림의 표면을 덧그리려하다, 멈춘다.
살짝 띄운 손가락을 소녀의 뺨에 미끄러뜨리며, 하란은 황홀하게 중얼거린다.
「내 올리」
「네 게 아니야!」
순간적으로 고함을 지르자, 하란은 깜짝 놀라 파스토르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 웃는다.
「미안, 나도 모르게. “네” 올리였지」
「에, 아…… 아아……」
「“이번 올리”도 잘 됐어. 전보다 고가가 붙을 거라고 생각해」
「이번……?」
「아ー, 미안. 이것도 듣기 싫은가…… 에ー 그러니까…… 이 올리도 잘 그려졌다고 하면 되려나. 응, 정말 살아있는 것 같아. 요전에 그림의 모델을 만나게 해달라는 말을 들었거든. 모델은 파스토르의 머릿속에 있다고 몇 번을 설명해도 전혀 믿지 않으니까 곤란해」
파스토르는 침대에서 기어나온다.
하란 왈 파스토르가 그렸다고 하는 “올리 그림”은 분명히 모델은 보며 그린 듯한 생동감이 있다.
“올리”는 파스토르가 어렸을 때부터 소재로 삼고 있던 모티브로,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이상의 여성이다.
――정말, 그랬던 걸까.
정말로 올리는 실재하지 않는 걸까.
그 사실이야말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제정신…… 인 건가…… 너는」
「에? 뭐가?」
「올리, 가, 없어도……」
「하아ー? 예술가가 하는 말은 잘 모르겠네…… 뭐 됐어. 이 그림 가져갈 테니까」
「아, 안 돼!」
하란은 제지하는 파스토르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그림을 가지고 간다.
무자비하게 닫힌 문을 허둥지둥 열고, 파스토르는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마을에 소음이 울려퍼지고 있다.
도로를 다니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목소리, 여러 음악, 어지럽게 바뀌는 광고.
「조금 비켜줄래?」
등 뒤에서 방해라고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와, 파스토르는 놀라며 옆으로 비켜선다.
방금 전까지 파스토르가 있었던 침실이 지금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가 되었다.
「이……거, 어떻게……?」
갑자기 백일몽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파스토르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려고 했지만 폐로 공기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몇 걸음 비틀거리다 벽에 손을 대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가슴을 움켜잡는다.
꿈뻑, 꿈뻑 눈을 감는다.
흥건히 맺힌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흘러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진다.
「――너, 어디서 왔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든다.
검정에 가까운 진한 보라색 머리카락, 졸린 듯한 두 눈, 심한 새우등――.
그 순간, 파스토르는 “자신”을 떠올렸다.
「레그너스, 너……!」
「마치 꿈에서 헤매고 있는 듯한 표정이군. 너도 올리한테 버림받았나?」
「그럴 리가 없잖아! 올리는 그런 짓 하지 않아!」
고함 친 순간, 갑자기 호흡이 편해진다.
파스토르는 비틀거리며 일어서 레그너스에게 달려든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카페에서 파는 기간 한정 딸기 라떼를 사러 왔다」
「꿈속에서 마셔서 어쩌려고!? 네 몸은 죽기 직전이라고!」
「나에게 있어선 여기가 현실이다. 벌써 40년이나 살았어」
「뭐…… 라고……?」
「아기 모습으로 고아원 앞에 버려져 있었다. 그 세계는 전부 내 꿈이고 망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네가 있다는 건 역시 꿈은 아닌 것 같군」
레그너스는 그렇게만 말하고, 아까의 전언대로 라떼를 주문하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다.
파스토르가 쭈뼛거리며 따라가자 레그너스는 두 사람 몫의 컵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파스토르도 재촉 받아 자리에 앉고, 맛이 예상가지 않는 핑크색 카페라떼를 홀짝인다.
「……맛은 나나?」
「하?」
「라떼 맛」
「에? 아아…… 뭐」
「반은 꿈에 먹혔군」
「뭐?」
「꿈속에선 모르는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들의 세계에 딸기는 없어」
파스토르는 얼이 빠져 손에 쥔 화려한 핑크색 라떼를 내려다본다.
「지갑을 꺼내」
「……아니, 없어」
「가지고 있을 거다. 그런 옷을 입고 있어. 코트 안 주머니를 찾아봐」
파스토르는 레그너스의 말대로 코트의――스스로가 코트를 입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차렸지만――안쪽에 있는 주머니를 뒤진다.
단단한 가죽의 감촉이 느껴져 꺼내본다.
지갑을 열어보니 운전면허증이 들어있었다. 사진은 파스토르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이름이 써있다.
「……누구야 이건」
「이 세계의 너다. 네 직업은?」
「연구자」
무심코 답해버려, 파스토르는 얼굴을 구긴다.
입 속에 남아있는 딸기 라떼의 맛이 진해진 느낌이 들어 지갑을 레그너스에게 밀어붙인다.
「너, 지금…… 나를 “여기”에 묶어두려고 했지?」
파스토르가 노려보자, 레그너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라떼를 홀짝인다.
「나는 너를 마음에 들어 했어」
「웃기지 마!」
「여기에 올리는 없어」
파스토르는 숨을 들이마신다.
레그너스는 웃는다.
「나는 눈을 뜨는 방법을 모른다. 깨어날 생각도 없지만――조금 쓸쓸하기도 해. 동류를 원해. 너라면, 괜찮을 것 같군」
있지, 라며 레그너스가 어두운 눈으로 파스토르를 바라본다.
「함께 올리를 찾지 않겠나. 그것도 붙잡아두면, 너랑 내가 독점할 수 있어」
파스토르는 일어섰다.
방금 전까지는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로 돌아가면 되는지 알고 있다.
「나는 너처럼 되지 않을 거야.평생 혼자 거기 있어!」
파스토르는 그렇게 내뱉곤 진찰실 침대에서 눈을 떴다.
벌떡 일어나 옆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레그너스의 몸에서 링거 바늘을 뽑아낸다.
메스를 그 목에 찔러 넣으려고 했지만,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멈췄다.
일부러 죽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 몸은 곧 죽는다.
죽는다고 해도――레그너스는 이미, 꿈속에서 살고 있다.
몇 가지의 꿈속에, 몇 명의 자신과, 몇 개의 인생――그 어디에도 올리는 없다.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올리가 파스토르를 말린 이유가 지금에서야 알 것 같았다.
꿈을 꿈이라고 구분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헤매어 벗어나지 못하게 될 참이었다.
뜻밖에도 꿈을 꿈이라고 자각할 수 있게 해준 건 레그너스였다.
심호흡을 하고, 파스토르는 레그너스의 몸에 링거를 다시 꽂는다.
「이게 현실…… 지금이 현실……」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고, 파스토르는 기도하듯이 그 자리에 웅크렸다.
+++
「……흐응. “이렇게 되는” 건가」
레그너스는 카페에서 딸기 라떼를 홀짝이며 아무도 없는 맞은편 자리를 바라본다.
파스토르와 파스토르의 지갑, 파스토르가 마시던 라떼가 담긴 컵――그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것을 인식조차 하고 있지 않다.
「내가 깨어난 건가…… 그 녀석이 깨어난 건가……」
눈을 뜨는 방법은 모른다.
벌써 몇 년이나 「분명 이 세계가 현실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 날 꿨던 꿈이 현실이었다면.
지금 있는 현실이 꿈이라면.
「――슬슬, 다른 꿈을 꾸어도 좋을 때인가」
그렇게 중얼거리곤, 레그너스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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