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를 아십니까
「잠자는 공주의 우울과 한때 아이였던 보호자들」 32화 오픈 카드로 쇼 다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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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폭이 너무 다르다.
내가 아무리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도 비스크는 천천히, 내 등 뒤에 바싹 따라붙는다.
조금 달리면 힐 때문에 비틀거려 넘어질 뻔하자 비스크가 살짝 손을 뻗어 도와준다.
뿌리치고 노려보면, 비스크의 미소. 이걸로 일순.
마음에 상처를 입고 비뚤어진 아이를 끈기 있게 붙잡는 상냥한 고아원 직원으로서는 완벽할지 몰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힌 장본인으로서는 사악하기 짝이 없다.
나는 비스크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도서관을 뛰쳐나와 꾸물꾸물 광장을 가로질러 겨우 중앙 공원까지 도착해 뜻밖에도 그로우가 말한 「적어도 차려입고 공원에 간다던가」를 실현하는 형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하아하아 하고 숨을 헐떡이다 결국 멈춰 서서 비스크를 돌아본다.
「왜 여기까지 따라오는 거야!? 고아원 원장 선생님은 한가해!?」
「실은 그렇습니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일은 얼마든지――」
「선대가 쓰레기였던 탓에 원장의 권한이 현저하게 제한되었어요. 이스쿰 사제원에서는 모든 게 제 일이었습니다만 여기에서의 제 일은 “허가를 내고,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거의 명색뿐인 거죠」
「에…… 그렇구나……」
「저는 한가함을 달래기 위해 아이를 위한 낭독회를 열거나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거나, 당신을 따라다니는 등 유유자적한 매일입니다」
그건 평범하게 고아원 일로 바쁜 거 아니야? 나를 따라다니는 거 이외는.
하지만 업무로서 규정되지 않은 걸 하고 있는 거니까 일은 아닌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건 거짓말이 아니란 말이지.
「……라니, 안 돼, 안 돼! 사생활까지 불우한 아이들을 걱정하는 엄격하지만 상냥한 고아원의 원장 선생님 같은 말을 해도 속지 않을 거니까!」
「확실히, 저는 세간으로부터의 그런 평가를 소중히 하고 있다. 그러니까 저는 이런 사람의 눈이 많은 장소에서 어린 소녀에게 울며 매달리거나 억지로 따라가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만이라도 저에게 시간을 주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뒤가 아니라, 가능하다면 옆을 걷고 싶어」
비스크는 당연하다는 듯이 옆에 서, 나에게 팔을 내민다.
「……혼자서 걸을 수 있어」
「――다리, 한계잖아요 그러니까 멈춰주었다. 저쪽에 벤치가 있으니까 거기까지 제 팔을 잡아」
「뭐…… 그걸 노리고 쫓아온 거야!?」
「노렸다고 할까…… 뭐어, 그렇게 되겠지 하고. 힐이 익숙한 부인의 걸음은 아니었으니까요」
「비스크의 그런 점 싫어」
「올리. 저를 공원에서 흥분시켜서 어쩔 셈입니까?」
안 되겠다, 이 사람 너무 무적이야.
하지만 다리가 한계인 건 말 그대로다. 지금 당장이라도 구두를 벗어버리고 싶다.
나는 싫은 기색을 보이며 비스크의 팔을 잡는다. 그것만으로도 꽤 걷기 쉬워진다.
벤치에 도착하자 비스크가 무릎을 꿇고 구두를 벗겨준다.
「아아…… 이건…… 생각보다 심하군……」
「에…… 내 발, 어떻게 됐는데……?」
「물집이 터져서 피가 났습니다. 잘도 여기까지 참았네요」
「그야 비스크가 싫으니까」
비스크는 소리를 올려 웃는다.
벗긴 구두를 가지런히 정돈해 나한테서 떨어진 장소에 놓고 상의를 벗어 지면에 펼친다.
에, 아니 잠깐만, 기다려 그런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원단에 몸에 맞춰서 만든 것 같은 쟈켓을 당신 왜 갑자기 땅바닥에.
「발을 여기에」
「ㅁ, 못 놔!」
「어차피 이미 바닥에 깔아버렸으니 올리가 이걸 써주지 않는다면 저는 상당히 얼간이 같은 짓을 한 거네요. 그렇게 저를 거절하면 여기서 당신의 발을 핥을 거예요」
「시, 싫어!」
할 수도 있다.
사람의 눈이 있든 없든, 비스크는 분명 한다.
내 발을 침으로 끈적끈적하게 만들면서 타인에게는 「상처를 핥아주고 있었습니다」라던가 웃는 얼굴로 말한다. 그리고 주변은 그걸 믿는다.
어쩔 수 없이 비스크의 고급 쟈켓 위에 발을 올려둔다.
우우, 질감이 좋아……
비스크는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짓고 내 귀에 「여기 있어」라고 귓속말을 하곤 일어선다. 구두를 가지고 가는 게, 마치 나를 믿지 않는 것 같다.
뭐어…… 딱히 나는 맨발로 도망쳐도 상관 없는데.
그치만 발이 엄청나게 다칠 것 같네…… 구두를 잃어버리면 그로우한테 이것저것 질문공세를 당할 지도 모르고…… 비스크랑 만났다고 대답하면, 그래서 구두를 빼앗겼다고 대답하면, 그로우는 비스크를 죽여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건 싫네에」
비스크는 짜증나지만, 죽어줬으면 하는 정도는 아니다.
화가 나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귀찮지만, 기본적으로는 상냥하고.
화를 내는 포인트도 알기 쉽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나 「배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1년 전, 나는 비스크에게 하란을 떠넘기고 그 마을에서 도망쳤다.
비스크와는, 어찌어찌 화해한 분위기였다.
의지하기도 했다.
비스크가 나를 위해서 준비해주겠다고 한 생활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틀림없이, 그건 비스크에 대한 배신이었다.
비스크는 나를 믿었던 것이다.
내가 비스크를 용서하고, 비스크를 믿고, 비스크를 의지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로우를 의지했다.
그치만 당연한 거지? 그로우는 망가졌을지도 모르지만 나한테 약을 먹이거나 묶은 채로 방치하거나 기억을 조작하거나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지.
사람은 죽였지만.
아니 죽이진 않은 건가. 목이랑 몸통을 절단하긴 했지만.
「오래 기다리셨죠」
「――응?」
비스크가 돌아왔을 때, 그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에!?」하고 목소리를 올렸다.
「뭐…… 뭐야 그거!?」
「에…… 아이스크림입니다만……」
「아이스크림이 있는 거야!?」
「아아…… 그러고보니 이스쿰에는 없었으니까요, 아이스크림 가게. 왕도에서는 날씨가 풀리면 주로 공원에 점포가 서게 됩니다. ――몰랐습니까?」
몰랐다.
어째서지.
작년 겨울에 이 마을에 와서, 지금은 두 번째로 맞이하는 봄인데.
아니 뭐, 어째서라고 할 것도 없다.
내가 결코 세계와 연관되는 일이 없도록, 은둔 생활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내 이동 범위는 집과 도서관, 그 사이에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뿐이고 옷도 그로우가 집에 부르는 재단사에게 부탁하고 있다.
딱히 좋아서 틀어박혀 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 막 이사 왔을 무렵, 근처에 살고 있다고 한 청년이 나한테 조금 억지로 다가온 적이 있다.
억지로 라고 해도, 물론 내 “옛날 친구들”정도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반적인 범주의 억지다.
조금 성가실 정도로 따라와서 식사를 권유하거나 무시당하면 길을 가로막거나, 그런 녀석.
그걸 창문으로 본 듯한 그로우가 나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주었다.
하필이면 칼집에서 빼낸 칼을 가지고.
나는 목격했다. 목은 날 수 있다고.
어떻게든 그로우를 만류하고 청년을 멀리까지 도망치게 했지만, 근처에 살고 있다는 청년은 며칠 뒤에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그로우는 나를 누군가의 아내로 보낼 생각이지만, 그로우가 인정하지 않은 남자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용서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면 「사랑 받고 계시네요」라는 훈훈한 대답이 돌아오지만 다들 모르고 있는 거다. 협박으로 칼을 빼드는 사람과, 경고 없이 사람의 목을 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영혼의 형태가 다르다는 걸.
「라밍과 베이란, 어느 맛이 좋나요?」
「에에…… 으음…… 어떤 걸로 할까……」
라밍은 바나나 같은 것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
베이란은 신 것으로 여성에게 인기 있는 과일.
참고로 어느 쪽도 내가 좋아하는 것.
바로 고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으면, 비스크는 나에게 라밍을 내민다.
고를 수 없을 때에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 골라주면 안심 된다.
나는 라밍을 받아 들고, 농후하고 걸쭉한 단맛이 있는 아이스크림을 핥는다.
차가워…… 맛있어…… 달아…… 이건 천사의 음식이다……
비스크는 그런 나를 훈훈하게 바라보고 있다.
「맛있어?」
「맛있어요」
「반 나눠먹을래요?」
「ㅂ…… 부탁드립니다」
비스크의 베이란과 내 라밍을 교환해, 나는 나잇값도 못하고 들떠버린다.
시다. 맛있다. 이건 여신의 음식이다.
「아이스크림, 처음 먹는 거죠?」
「응? 으ー응…… 처음이지만…… 꿈 속에서는 좋아했어」
나는 부지런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답한다.
비스크는 「꿈……」이라고 반복한다.
「25년 동안 꿈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그건가요?」
「응. 그 이야기 하니까 비스크 갑자기 상태 이상해져서, 두 번 다시 그 꿈을 떠올리지 말라고 한 거」
「――아마도」
「응?」
「본래 올리는 “꿈의 세계의 사람”이라고」
「잘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것 같아」
저쪽에서는 혼수 상태인 나는 잠든 채로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잠든 나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큰나무의 저주로 잠들기 전부터 나는 벚꽃을 알고 있었다.
「뭐어……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돌아가는 방법도 몰라. 갑자기 엉겅퀴 밭의 꿈도 꾸지 않게 되었고」
「엉겅퀴라니?」
「저쪽의 꽃. 가시가 있는 작은 꽃으로, 【마른 계곡의 마물】이 있어」
나는 비스크를 본다.
그 눈은 굉장히 슬퍼 보인다.
「――그로우는…… 당신과, 경치를…… 공유하고 있는 거네요……」
「조금 뿐이지만. 아마 【마른 계곡의 마물】은 꿈 안에 있는, 여러 사람의 꿈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비스크도 만난 적은 있을지도」
「기억에는 없지만요」
꿈에서 【마른 계곡의 마물】과 만난 그로우는 그에게서 나를 이쪽 세계로 불러들일 방법을 들었다.
그리고 【마른 계곡의 마물】은, 나에게 깨고 싶은 건지 꿈을 꾸고 싶은 건지 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 엉겅퀴 밭의 꿈이 입구다.
내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계속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마른 계곡의 마물】은 나를 지면에 묶는 쇠사슬을 꺼냈다.
그건 그로우가 강하게 했다고 하는, 이 세계와의 「연결」일 것이다.
라는 걸, 나는 이 1년 동안 그로우와 이야기했다.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그로우는 내 입에서 「다시 한 번 잠들고 싶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걸 내가 말하게 만들 만한 상대도 두려워한다.
그러니까 나한테 상냥하게 대해준다.
깨닫고 보면, 나는 애써 꿈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로우가 【마른 계곡의 마물】의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흥미가 없다는 듯 행동했다. 그러면 그로우가 기뻐보였으니까.
바삭바삭, 바삭바삭.
나는 아이스크림이 올라가 있던 콘을 씹는다.
옆에서는 비스크가 똑같이 바삭바삭하고 콘을 씹고 있다.
「――있죠, 올리. 이 뒤에 시간은?」
「에? 없는데」
「그런가요. 실은 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에? 시간 없는데」
「폐관 시간이 되지 않으면, 당신의 시녀는 돌아오지 않아. 폐관 시간까지 아직 몇 시간 남았습니다」
「그런 거 관계 없는데」
「올리」
「비스크랑 같이 있을 시간은 없습니다」
「――하란과 만나줬으면 해」
나는 깜짝 놀라 비스크를 본다.
비스크는 무척이나 진지한 눈을 하고 있다.
「……에? 이 마을에 있어? 왜?」
「놓고 올 수는 없었어」
「아……」
내가, 하란을 비스크에게 맡겼다.
겁에 질려 우는 하란을, 비스크에게 떠넘기고 나는 도망쳤다.
그리고 비스크는 하란을 버리지 못하고, 이 마을까지 데리고 왔다.
「……입원이라던가, 했어?」
「아뇨, 꽤 안정되어있어요. 아까는 조금 지나치게 협박했지요」
「엄청나게 죄악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자살 시도를 반복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자해도 심해서. 지금도 눈을 돌리면 손톱을 벗기려고 해」
「왜 그런 짓을……」
「스스로를 벌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비스크의 말을 떠올렸다.
벌은 당연한 것. 하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망가지고 만다.
「봐요, 파스토르가 하란의 “대신”을 준비해두었잖아요」
「했지…… 라고는 들었지만…… 정말 가능한 거야? 사람의 대신을 만든다니」
「대단한 일도 아니야. 상매를 잘 하는 남자에게 하란의 얼굴과 목소리를 줬을 뿐입니다. 기억의 혼탁이 있다, 라는 파스토르의 진단서를 가지고 말이죠」
뭐야, 클론이라던가 그런 초기술이 아니었던 건가.
하지만 그런 건 간단하게 들킬 것 같은데…… 하지만 진짜 하란이 “저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건가……
「그 뒤에 그 “대신”과 하란이 동업자가 되어서」
「뭐라고?」
「하란은 왕도의 상관의 분관을 가지게 되었다」
「전혀 “놓고 올 수는 없었다”라는 느낌이 아니야! 굉장하네, 하란 새로운 상매에 의욕적이네!?」
「저도 일이 있기에 24시간 하란을 돌봐줄 수는 없으니까」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왠지 복잡한 기분이다.
「제대로, 나름대로 챙겨주고는 있어요. 어쨌든 지금의 하란은 밀실과 어둠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무서워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만……」
그렇겠지.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나도 잊고 싶다.
「계속 올리와 만나고 싶어합니다」
「왜? 오히려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되니까 만나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은데……」
「구해줬다고 하면서」
뭐, 구해줬다고 하면 구해준 거긴 하지만……
애초에 지하실에 보내진 것도 내가 원인이고 말이지…… 하지만 원래는 그것도 하란 탓이고…… 그렇다고 해도 과하긴 했으니까……
「그 녀석이 당신에게 무엇을 했는지는 그 녀석한테 전부 들었습니다. 용서하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저도 용서하지 않았어. 하지만…… 한 번, 얼굴을 보여줬으면 해…… 어둠을 두려워할 때, 그 녀석은 계속 올리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 그렇게 거절하기 힘들 게 말하는 거, 좋지 않아……」
「하란은 변했습니다. 그 녀석은 더 이상, 결코 당신을 상처 입히지 않아. 그 누구도 상처 입히지 못해. 무섭다면, 창 너머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아」
「내…… 내가 얼굴을 보여준다고 해서 무언가 바뀐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바뀝니다. 제가 알아」
「어째서?」
「제가 변했으니까」
비스크는 온화하게 미소 짓는다.
나는 표정을 구기고 비스크를 본다.
「비스크는 변하지 않았잖아?」
「이건 그런 거죠, 제가 미리 당신의 존재를 확인했으니까」
「아…… 그런가……」
분명 비스크는 도서관에서 나를 봤던 거다.
몇 주 전인지, 몇 달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계속,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어떻게 바뀌었는데?」
「적어도 당신이 무사히 살아있고, 웃고 있다――그걸 이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악몽이 한 가지 줄었습니다」
「걱정하고 있었어?」
「당신은 그로우를 모르고 있어」
또 그로우의 악담을 한다.
알고 있다, 그로우가 조금 불안정하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그건 내가 신경을 쓴다면 어떻게든 된다. 약도 먹고 있고.
하지만, 뭐어.
내 얼굴을 보고, 내가 무사하다고 안심하고 싶다――정말 그 이유 뿐이라면.
「문이 잠기는 방에서는 안 만날 거야……」
「어차피 하란은 문이 잠기는 방에는 들어가지 못해요. 상관도 하란이 드나드는 장소는 전부 문을 떼어버렸어」
「철저하네……」
「열쇠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하란은 재기불능이 되니까요」
비스크가 일어선다.
「마차를 불러오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려」
「네에」
「대답은 짧게」
말해버리고 나서, 비스크는 작게 자기 자신을 탓한다.
「죄송합니다, 거의 버릇 같은 거라」
「선생님, 죄송합니다아」
일부러 길게 늘인 말투로 말하자, 비스크는 「벌이야」라며 내 머리에 키스를 하곤 마차를 부르러 간다.
하란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비스크는 좋은 사람이네에.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도 머릿속이 꽃밭은 아니다.
비스크는 그저, 내가 내린 벌의 성과를 나에게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가장 심한 벌을 받고 망가진 하란의 모습을 보여주고, 딱딱해진 내 마음을 풀어줄 한 수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결과, 비스크가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종 목적이 「공원에서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가 아니라는 건 틀림 없다.
원장실에서, 비스크는 나에 대한 집착을 숨기지 않았다.
그로우에 대한 대항심도.
그건, 어쩌면 비스크 나름의 성의였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비스크는 모든 손패를 내게 보여줄 셈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비스크를 고르도록 하고 있다. ――그로우를 버리고.
나는 한숨을 쉬고, 지면에 깔린 비스크의 상의를 멍하니 바라본다.
구두는 내 발치에 나란히 놓여있다.
부디, 도망치고 싶다면 도망쳐주세요.
나는 구두에 발을 넣는다.
뒤꿈치를 넣으면 굉장히 아프다. 하지만, 잘하면 설 수 있을지도. 그렇게 해서, 마차를 발견해서 도망칠 수 있을지도.
그런 걸 생각하면서 다리를 흔들거리는 사이에, 마차가 내 앞에 멈추어, 객차를 연 비스크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보고는 조금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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