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를 아십니까
「잠자는 공주의 우울과 한때 아이였던 보호자들」 29화 밤의 여행길 본문
원문 링크 : https://novel18.syosetu.com/n7091gi/30/
夜の旅立ち
투명한 수조에, 은색 머리카락이 둥실둥실.
무척이나 아름답다.
허망하게 뜬 붉은 눈동자는, 그 누구도 보고 있지 않다.
찌른 펜으로 그은 얇은 목은, 모여든 의사들에게 꿰매져 작고 검은 실만 그 자취처럼 남았다.
이 물은, 자발적 호흡이나 식사를 할 수 없는 사람의 뇌에 영양과 산소를 전달해 준다는 것 같다.
마르스씨보다는 상처가 훨씬 얕으니까 일주일만 있으면 나올 수 있다는 것 같다.
나는 바짝 수조에 붙어 둥실둥실 떠있는 파스토르를 보고 있다.
통통 하고 유리를 손가락 끝으로 두드리면 시선이 헤엄쳐 나를 보는 느낌이 든다.
웃어 보이면, 그 입술에 미소가 띈 느낌이 든다.
어젯밤, 파스토르가 목을 그어, 나는 갑자기 자유로워졌다.
직원들이나 “올리”들은 나에게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파스토르가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 곁에 있어줬으면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싫다면, 나가도 좋다고 한다.
나의 존재는 파스토르를 극적으로 안정시킨다.
하지만 파스토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파스토르는 한순간에 부서지고 만다.
단, 일주일은 병원에 머물러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파스토르가 자살 시도를 한 것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큰 혼란이 일어난다, 고.
그러니까 파스토르가 수조에서 나올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될 때까지는 얌전히 있어줬으면 한다고.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지하실에서 파스토르를 바라보고 있다.
옆 방에는 마르스씨.
그다지 내가 여기 있지 않아도 파스토르는 병원의 인기인이니까 분명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리”들은 교대로 나타나 파스토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하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떠올렸다.
파스토르가 어렸을 때, 맡겨진 의사의 집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떠올렸다.
파스토르를 맡은 의사는 보다 우수한 인간을 “만드는” 것에 혈도를 올리고 있었던 것.
파스토르는 양눈을 도려내, 바라본 상대의 심층 심리에 깊이 파고드는 수상한 의안을 이식받았다는 것.
아무도 파스토르의 눈을 보게 되지 않은 것.
세상의 모든 것을 저주하는 것.
깨어나지 않는 나를 원망하는 것.
――그리고 하란에 대한 것.
나는 파스토르의 병실을 나와 지하실 더욱 안으로 들어간다.
복도의 맨 끝.
부자연스러운, 바닥의 움푹 들어간 곳.
잡아 끌어올리면, 바닥이 열린다.
계단이 있다.
지하에서는 은은하게 퍼지는 짐승의 냄새.
나는 램프의 빛을 의지하여 빵과 물을 안고 계단을 내려간다. ――파스토르 밖에 모르는 장소. 내가 기억해내지 못할 예정이었던 장소.
벽면 램프에 하나하나 불을 붙여, 나는 갇힌 짐승을 내려다본다.
훌륭한 갈색 머리카락의, 보석으로 전신을 장식한, 반신에는 검은 문신을 새겼다.
「――하란」
그렇게 부르면, 벽에 연결된 사슬에 묶인 채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하란이, 허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 공포에 질린 얼굴.
「……싫어」
「괜찮아, 물이랑 빵을 가져왔을 뿐이니까」
「싫어…… 싫어, 싫어, 오지마…… 싫어…… 싫어……!」
「하란. 괜찮아. 파스토르는 오지 않으니까」
「거짓말!」
하란이 소리친다.
기억하고 있다.
이 사람의 비명을 기억하고 있다.
간원과 통곡과 끝나지 않는 사죄를 기억하고 있다.
「자, 봐. 열쇠를 가지고 왔어. 도망칠 수 있어, 하란. 괜찮아, 이제 누구도 너를 괴롭히지 않아」
「싫어…… 열쇠, 싫어…… 사슬을 풀지 말아줘……! 싫어, 부탁이야! 올리! 용서해줘! 이제 안 해! 하지 않을 테니까!」
하란은 만약 내가 사슬을 풀고 그게 파스토르에게 보여진다면, 심한 짓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심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내가 그로우에게 도움을 구했던 것과 같이, 나는 하란을 구하려고 했던 적이 있던 것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하란의 이 상황을 알게 될 때마다.
그 때마다 파스토르는 하란을 철저하게 혼내 주었다.
1개월――
파스토르는 하란의 손톱을 벗겨, 손가락을 꺾어, 피부를 벗기고 눈을 파냈다. ――하지만 전부, 다음 날에는 나았다. 약해지지도 못하는 고통의 안에서, 하란은 부서지고 말았다.
내가 구하려고 할 때마다, 조금씩 망가뜨리고 말았다.
파스토르는 하란의 기억을 빼앗지 않는다.
고통의 기억을 쌓고, 쌓고, 그 무게로 무너지는 것을 그저 기다렸다.
――괜찮아, 하란은 제대로 “만들어” 두었으니까.
파스토르는 나에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이건”, 올 리가 좋을대로 해도 돼. 기뻐? 있지, 어떤 장난감으로 놀고 싶어? 어딜 도려내야 가장 큰 소리로 소리칠까나아.
나는 후회하고 있다.
그 때, 이런 거 필요 없어, 원하지 않아 라고 외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 순간, 하란은 이 지하실에서 분명 유일한 희망이었던 나에게 버려진 것이다.
나는 겁에 질려 우는 하란의 손을 묶은 사슬을 풀어주고, 빵과 물을 옆에 두었다.
그리고 등을 돌린다.
「올리……?」
「사다리도 내려둔 채로 둘 테니까. ――그럼」
「잠깐…… 부탁이야, 기다려줘! 부탁이야, 혼자 두지 말아줘……!」
어젯밤, 파스토르가 자살을 시도하는 바람에 하란은 거의 하룻동안 물도 식사도 받지 못했을 터이다.
그런데 물도 빵도 내팽겨치고, 하란은 내 다리에 매달린다.
고작 1개월 만에, 그렇게 힘 세고 거칠고 사람을 지배하는 기색을 걸치고 있던 하란이, 이렇게나 작아지고 말았다.
나는 하란의 정면에 쭈그려 앉는다.
그 우는 얼굴에 손가락을 올려, 입꼬리를 홱 끌어올린다.
「웃어, 하란」
「우, 아……」
「――이리와, 같이 나가자」
「하지만…… 밖은……」
「괜찮아. 지켜줄 테니까. 우선 물 마셔, 빵도 먹고」
재촉하면 하란은 우물쭈물 일어선다.
일어서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은 발걸음이다.
파스토르는 이렇게 말했다.
내 병명은 「연민과 자기 희생」이라고.
그리고 「오만과 냉혹함」이라고.
그건 “이걸” 말하는 거다.
파스토르가 몇 번이나 시도해도 나는 하란을 구하려고 한다. 원망해야 할 상대일 하란을. 파스토르는 그게 참을 수 없었던 거다.
문제만 일으키고, 제멋대로에, 어리광만 부리는 “울보” 하란.
버려진 것도 아니고, 그저 양친이 죽고만 불쌍한 아이.
파스토르는 하란을 싫어했다.
계속, 계속, 어렸을 때부터 싫어했다.
하란이 어딘가에서 울고 있으면, 내가 도서실에서 없어져 버리니까.
――거기서, 혼자서 울고 있어, 하란.
파스토르의 비웃음을 기억하고 있다.
떠오른다.
――올리는 너 같은 거 필요 없다는데.
파스토르는 나에게 하란을 보여주는 것을 관두고, 나는 완전히 지하실의 짐승을 잊었다.
만약 내가 떠올리지 못했더라면 파스토르가 자살한 지금, 하란도 이 지하실에서 조용히 죽어갔겠지.
파스토르가 “만들었다”고 한 하란으로 바뀐 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빵과 물을 위장 안에 욱여넣고, 하란은 내 옷 소매를 잡는다.
내가 슬쩍 그 손에 시선을 주면, 움찔하며 손을 놓는다.
나는 하란의 손을 잡아당긴다.
겁에 질린 표정에, 조금 안도가 보인다. ――천둥이 무서워 옷장에서 나오지 못했던 어렸을 때와 같은 얼굴.
한 달이나 지하에 갇혀있던 하란에게 있어 한낮의 빛은 지나치게 눈이 부실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밤을 선택해 하란을 데리러 왔다.
하란을 데리고 걷는 나를 보고 직원이나 “올리”는 움찔하긴 했지만 「파스토르가 기르고 있었어」라고 전해두면 자연히 납득하고 말았다.
갈아입을 옷이 필요하다 하니 준비해주었다.
즉 파스토르는 그런 남자다.
파스토르 방의 욕실을 빌려 하란을 씻겨주었다.
하란은 작은 소리에도 굉장히 놀라, 정면에서 내 얼굴을 보는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직원이 준비해준 갈아입을 옷은 병원복으로, 넉넉한 잠옷 같은 느낌이다.
액세서리를 전부 빼고 그런 평범한 옷을 입혀두니 문신만이 뚜렷해 보인다.
하란의 눈은 눈꼬리가 처져 있어, 눈동자도 크고, 평범하게 보면 용모는 무척이나 온화하다.
엄격한 인상이 있는 비스크와도, 사나운 조각상같은 그로우와도, 냉철한 험악함을 띄우고 있는 파스토르와도 다르다.
「……왜?」
내가 힐끔힐끔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하란이 조용히 목소리를 냈다.
「으응. 깨끗해졌네 싶어서. 액세서리는 여기에 모아둘게. 이거, 하란의 가방이지?」
파스토르의 옷장에 쑤셔넣어져 있던 낡은 가죽 가방. 이게 하란 거라고, 나는 알고 있다.
가방에 하란의 액세서리를 거칠게 쏟아 붓고 건네주려 했지만 하란은 불안한 듯한 모습만 보이며 받아주지 않았다.
「하란, 괜찮아. 이걸 가지고 있어도 아무한테도 혼나지 않으니까, 스스로 들어」
「그치만……」
「못 들겠어? 그럼 됐어, 내가 들어줄게」
「잠깐……! 미안, 알겠어, 내가 들게……!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줘……!」
「화 안 났어」
「미아……」
「하란!」
움찔, 하란이 몸을 움츠리며 얼굴을 가린다.
아무리 한 달이나 감금되었다고 해도, 다소 근력이 떨어졌다고 해도, 진심으로 맞붙으면 지금도 하란이 압도적으로 강할 텐데.
나는 공포로 경직된 하란의 뺨을 만진다. 입술을 덧그리면, 하란은 입술을 깨문다.
「내가 파스토르한테 이를 거라고 생각해?」
「……생각 안 해」
「솔직하게 말해, 하란」
「올리, 용서해줘……」
「나를 화나게 하면 마르스씨도 죽임 당하고, 너도 다시 지하실에 갇힐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란은 울기 시작한다.
내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대각선 아래의 바닥 근처를 노려본 채, 「용서해줘」라고 반복하고 있다.
나는 하란의 가슴에 가방을 밀어붙이고, 걷기 시작한다.
그러자 하란도 내 뒤를 조심조심 따라온다.
직원에게 부탁하면 마차를 준비해주기로 했다.
물론 직원은 주저했지만 「내일 돌아올게요」라고 전하자 마지못해 마차를 준비해주었다.
마차에 타는 것도 무서워하는 하란을 가까스로 달래 내가 어디로 갔냐고 하면, 구시가에 있는 비스크의 집이다.
똑똑.
2층 창문에 불이 켜지고, 비스크가 맞이하러 내려온다.
나와, 옆에 서있는 하란을 보고 비스크는 우뚝 선다.
하란은 비스크의 모습을 보자마자 경직되어 내 등 뒤에 숨듯이 쭈그려 앉는다.
「……너, 하란이야!? 어째서 올리랑 같이…… 올리, 파스토르는?」
「나, 퇴원했어」
「그건…… 축하드립니다……?」
「올리, 싫어…… 병원으로 돌아가자, 여긴 싫어……」
「병원이 더 무서워, 하란. 상관에는 지금 “다른 하란”이 있고」
「비스크도 분명 나를 때릴 거야……! 지하실이 좋아…… 지하로 돌아가고 싶어……」
나는 비스크와 시선을 교환한다.
거의 지면에 쭈그려 앉아있는 하란을 안아 들듯이, 비스크는 우리들을 집으로 맞이해준다.
울며 겁에 질린 하란을 어떻게든 손님용 방에 들여보내고, 달래서 수면제를 주려고 하는 비스크를, 얇은 천 한 장을 사이에 둔 다른 세계의 일처럼 바라보면서 나는 소리도 내지 않고 다시 집을 나선다.
양손을 벌리고, 밤을 올려다본다.
흰 숨이 별에 녹는다.
예감이 있었다.
비스크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나를 등 뒤에서 안아든다.
단단하고, 힘이 세고, 따뜻한 팔이.
「――기다렸나? 우리 공주」
「또 나를 감시하고 있었어? 그로우」
「자백하자면 오늘 아침부터다. “꿈의 계시”라는 걸로 말이야. ――화살 상처가 낫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구출이 늦은 것에 대한 힐책이라면 받들지」
「그로우. 나, 멀리 가고 싶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그럼 배에 탈까. 지금부터 마을을 빠져나가면 빠른 아침편까지는 항구에 도착할 수 있어」
「또 하나 부탁이 있어」
「듣도록 하지」
「나를 좋아하지 말아줘. 나는 그로우를 좋아하게 되지 않으니까」
그로우는 크게 눈을 떴다.
그 눈을 쓸쓸한 듯이 가늘게 뜨고, 내 입술 끝에 입을 맞춘다.
「분부대로, 우리 공주」
――――――――――
제1부 완결이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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