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를 아십니까
「잠자는 공주의 우울과 한때 아이였던 보호자들」 86화 악녀 지남의 1페이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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悪女指南の1ページ
갑자기, 태양이 흐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과 같은 곳에 서있는 그로우는 표정도 어젯밤처럼 온화하다.
마치 저곳만이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다.
계속 조각상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단정한 용모, 단련된 몸, 연극하는 듯한 말투――.
그로우가 바깥 세계를 위해 만든 “만들어진 자신”은 어디에서 봐도 완벽하고, 그 완벽함에 지켜진 채 보냈던 나날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로우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에 실망하여 죽음을 선택하고,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잃고, 나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꿈에서는 계속해서 나를 죽인다.
그리고 그 꿈이 현실에 잠식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천천히 그로우에게 다가간다.
얼굴에 살짝 손을 뻗자, 훈련을 잘 받은 대형견처럼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로우의 뺨을 어루어 만지고 손끝으로 귀를 간질였다.
「집에 안 돌아갔었어?」
「당신이 이곳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비스크를 죽이러 가야 하잖아?」
「거기서 며칠 묵을지도 모르는데」
「비스크가 그 정도로 어리석다면, 역시 죽이러 가야지」
그로우는 키득키득 웃으며 내 손바닥에 뺨을 문지른다.
바짝 마른 남자의 피부 감촉.
그로우는 감촉마저 조각상 같다.
「비스크는 괜찮았어, 그로우」
「선량해졌나?」
「으응. 제대로 사악함에 물들었어. 애초에 소질 있었잖아?」
내가 장난스럽게 웃자 그로우의 웃음에 아주 조금 괴로움이 섞인다.
「그럴지도 모르지」
「나 비스크가 어른이어도, 사악해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어」
「그럼 고르는 건가? 비스크를」
「아니. 그야 하란도 파스토르도 사랑하고 있으니까」
「――나는? 우리 공주」
「뭐라고 대답해줬으면 해?」
「진실을」
「소중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사랑하진 않아」
후, 하고 그로우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린다.
자신도 모르게 폐에서부터 뱉어낸 듯한 짧고 옅은――실소.
그로우가 나를 보는 눈은 서늘하고, 온화하고, 따뜻한 친애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당신에게 있어서 “특별한” 상대다」
「그건 그럴지도」
「당신이 바란다면 나는 뭐든지 되도록 하지. 당신의 부친도, 개도, 검도. 그 녀석들은 따라할 수 없어. 지나칠 정도로 자제심이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
우리들은 비밀을 속삭이는 어린아이처럼 키득키득 웃었다.
나 이외에 대한 그로우의 자제심은 의심스럽지만――.
그로우는 분명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소원을 위해 남다른 자제심을 발휘하고 있는 거겠지.
「피곤할 텐데 서서 이야기하게 만들어서 미안하군. 부디 느긋하게 쉬도록 해」
「침실까지 데리고 가주진 않는 거야?」
「당신이 바란다면 그렇게 하지」
「목욕 준비도 해줬으면 좋겠네」
「제멋대로군, 우리 공주는」
「그로우 말대로 남자들을 좋을 대로 가지고 노는 마녀가 될까 싶어서」
그로우는 내 몸을 안아 든다.
나는 그로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만나고 싶은 아이가 있는 곳에 가서 애인처럼 굴고, 다음 날에는 다른 아이가 있는 곳에 가는 거야. 그런 여자가 될래, 나」
「그러면 당신은 편안해질 수 있을까?」
「으ー응…… 어떠려나. 모르겠네. 하지만 해볼게. 모두가 나한테 질려서, 싫증나서, 새로운 누군가를 좋아하는 날이 올 때까지」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면?」
「그렇네에……」
나는 웃어보였다.
「같이 꿈이라도 꿀까」
「그 꿈은 나도 함께 꿀 수 있을까」
「그로우 꿈은 무서우니까 안 돼」
「나는 언제나 따돌림 당하는군」
토라진 듯한 말투를 쓰는 그로우가 신기해서, 나는 따끈하고 따뜻한 기분에 잠긴 채 부드러운 침대에 누웠다.
그로우는 목욕 준비를 하고 다시 나를 데리러 온다.
옷을 벗겨주고, 나를 욕조에 넣고 커다란 손으로 정성스럽게 머리카락을 감아준다.
나는 접은 수건을 겹친 욕조 가장자리에 머리를 기대고, 느긋하게 눈을 감는다.
「기분 좋아…… 편안해진다」
「휴식이 필요했던 거지? ――그렇다곤 해도」
그로우의 시선이 슬쩍, 내 목덜미를 긴다.
나에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비스크가 남긴 새로운 키스마크가 남아있겠지.
「그다지 쉰 것처럼 보이진 않는군」
나는 물을 떠서 첨벙첨벙 그로우에게 뿌린다.
하지만 그로우는 동요하지도 소란을 부리지도 않고, 거품투성이인 내 머리카락을 물로 씻어내린다.
나는 욕조 안에서 빙글 방향을 바꿔 욕조 밖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그로우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들어올래?」
「내가 들어갈 여유가 있어 보이진 않는군」
「달라붙어 있으면 들어올 수 있을지도」
「올리, 그런 식으로 남자를 유혹하면 안 돼」
「그치만 그로부터 그로우랑만 안 했는 걸」
「말했잖아? 나는 그 녀석들과 다르게 자제심이 있다고」
그로우가 일어서 나에게 등을 돌린다.
커다란 등.
「있지, 그로우」
「응?」
「자고 가. 빈 방 잔뜩 있고」
「그건 내 영역을 넘은 일이야」
「집 앞에서 계속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영역을 넘는 일이 아닌 거야?」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욕실에서 머리를 감아주는 건?」
「당신이 바란 거라고 기억하고 있다만」
「자고 가라고 부탁하면 자고 가줄 거야?」
「물론이다, 우리 공주. 당신이 그러길 바란다면」
「그로우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의 태도를 당신이 나무라는 것도 이상하다만?」
그로우는 재미있다는 듯이 돌아본다.
욕실의 벽에 등을 기댄 채, 욕실 안의 나를 보고 있다.
감정을 알 수 없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는 것에, 마치 내가 수조에 갇힌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로우의 의사를 신경쓰는 게 이상해?」
「그렇군. 조금 우스워 보여」
「왜?」
「당신이 바랐기에 고아원의 쓰레기들이 협정을 깬 건가?」
「……그건 아닌데」
「녀석들이 그걸 바란 거지」
「응, 뭐어……」
「녀석들이 그러고 싶었으니까, 당신은 그에 따랐다. 요구되는 것을 주는 것은 편하지」
「……그런 식으로 보여?」
「당신은 벌레가 잔뜩 꼬이는 무력하고 달콤한 과자 같아. 때문에 요구하지도 않는 나에게 까지 그 몸을 잘라내어 평등하게 주려고 하고 있어. 악녀 같은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군. 진심으로 악녀 행세를 하고 싶은 거라면 한 달 정도는 고아원 쓰레기들을 무시하는 정도의 분방함은 보여줬으면 해」
「혹시, 저는 지금 아버지의 노여움을 산 걸까요?」
내가 진지하게 묻자 그로우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그치만 악녀가 되는 법을 모르겠는 걸」
내가 볼을 부풀리자 그로우는 녹을 듯한 미소를 짓는다.
이 사람, 정말 나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가끔 그 날 본 꿈은 내 착각이 아니었나 싶지만, 아이를 학대하는 어른을 때리던 그로우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들떠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럼, 우리 공주. 악녀로서 처음으로 누굴 미치게 하고 싶지?」
「다들 이미 미쳐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게임이다, 올리. 휘두르고, 괴롭히고, 고통과 인내를 즐기는 법을 가르치는 거야. 당근을 주기만 하는 건 좋은 훈육법이 아니야」
「그거 비스크한테는 전혀 효과 없을 것 같아」
「좋은 착안점이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다루기 쉽지?」
「그건……」
뿅 하고, 머릿속에 하란이 떠오른다.
나는 있는 힘껏 얼굴을 찡그린다.
「그거 그로우가 어렸을 때 하란을 괴롭힌 거랑 관계 있어?」
「아니. 아름답고 재산이 있고, 장래가 약속된 주제에 고아원에서 엉엉 울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라는 듯이 당신이 신경써준다는 것을 아는 약삭빠른 꼬맹이가 죽을 정도로 거슬렸을 뿐이다」
우와아.
생각보다 진심으로 싫어하고 있어…….
「부모님을 사고로 잃었으니까 엄청 불쌍한 아이였잖아?」
「어두운 미래를 향해 기어가는 선택지 밖에 없는 아이들을 매일 접하고 있는 당신이 할 말인가?」
「나는 불쌍함을 저울질 하면서 태도를 바꾸지 않는 걸」
「고결하군. 그렇기에 당신을 사랑했다」
「나한테도 심술 부렸잖아」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말이지. 그리고 당신은 나조차도 가여워 했어」
「혹시, 저는 지금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은 걸까요?」
「병적이라고 말한 건데 말이지」
나는 입술을 삐죽인다.
「마실 것을 준비해두지. 현기증 나기 전에 나오도록 해」
그로우는 이번에야 말로 정말로 욕실에서 나갔다.
그로우는 내 전라를 봐도 조금도 흥분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내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져 있으면 흥분하려나……?
본인이 나를 괴롭게 하고 싶은 거니까 그건 아닌가.
「전에는 키스만으로 그렇게 동요했으면서……」
귀염성이 없어졌다.
약을 먹고 안정되어 있으니까?
나에게 본성을 전부 들켰으니까?
만약 내가 악녀로서 그로우를 흔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무저항으로 협박할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일단은 조금 더 몸가짐을 단정히 해볼까.
예를 들어 요전에 하란이 방에 들어왔을 때, 제대로 내쫓아야 했던 걸지도 모른다.
비스크가 방에 가두었을 때, 펜으로 목이라도 찔러보였으면 분명 비스크는 무척 당황해서 울며 사과하고 두 번 다시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목은 위험하려나…… 손등이 나으려나.
비스크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계속해서 손등을 찌르는 치킨 레이스. 틀림없이 내가 이긴다.
악녀랑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악녀인가아……」
나는 내 소중한 아이들을 떠올린다.
우선 그 날, 마치 비위를 맞추려는 듯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즐비 되어 있는 메뉴표가 도착했지만 나는 하란의 저택에 가지 않고 부녀였을 때처럼, 그로우와 각자 다른 방에서 아침까지 푹 숙면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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